김창숙은 3.1운동에 유림 민족 대표로서 참석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유림을 규합해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위해 파리장서운동을 계획했다.
“우리 한국은 유교의 나라로, 진실로 나라가 망한 원인을 궁구한다면 바로 이 유교가 먼저망하자 나라도 따라 망한 것이다. 지금 광복운동을 인도 하는 데에 오직 세 교파가 주장하고소위 유교는 한사람도 참여하지 않았다. 우리들이 이런 나쁜 명목을 덮어썼으니 무엇이이보다 더 부끄럽겠는가?”
김창숙은 곽종석, 김복한 등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한 파리 장서를 가지고 상하이와 북경을 거쳐 파리로 가기 위해 출국했다. 김창숙은 상하이에서 이 장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민족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에게 우편으로 보내고 국내 각 향교에는 한문본을 배포했다. 또한 중국의 언론, 정계, 각 국의 대사와 영사, 공사 등에도 배포하였다.